2012. 12. 8. 22:52ㆍ흐린날들의 풍경들/내 마음의 잔상(殘像)
오늘은 즐거운 화요일.
언제나 화요일만 되면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 반의 어린이 은행부원들.
선생님께선 바쁘시다며 우리들에게 저축 일을 맡기시는 바람에 우리 밀알 두레반에는 밀알 은행부가 따로 있다. 화요일 아침이면 우리 밀알 은행원들은 무척 바쁘다.
“야, 소미야! 빨리 내 저금부터 받아 줘. 나 지금 바쁘단 말이야!”
“예지야. 너 지금 너무 하는 것 아니니? 나도 손이 네 개쯤 더 필요한데 남는 것 있으면 좀 빌려주면 안돼?”
“뭐!”
“하하하!”
여기저기서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교실을 떠들썩하게 했다.
아이들이 가져온 저금에는 언제나 이런저런 소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손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손때 묻고 구겨진 지폐 한 장이 소중한 나의 저금통장에 들어가 까만 글씨로 숫자가 되어 돌아올 때는 뿌듯한 마음으로 나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사실 나의 손때 묻은 소중한 저금통장에 새 글씨가 새겨지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 하다. 우리 집에 있는 내 책상 위에는 10원짜리 100원짜리, 1000원짜리 여러 가지 돈들이 모여 있는 돼지저금통이 있다. 맑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속이 환하게 들여 보인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동전 또는 지폐 하나하나 마다 다들 자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엄마 심부름, 아빠 군화 닦기, 화분에 물주기, 강아지 돌보기 등 열심히 잔일을 해서 받은 용돈을 모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번 저금통을 열어 그 동안 모인 돈을 화요일마다 학교에 가져가 저금을 하는 것이다.
지난번 추석 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 친척들로부터 받은 용돈으로 갑자기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이 생기게 되었다. 추석이 지난 며칠 동안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미니카세트를 살까 말까 무척 고민을 하였지만, 결국 저축하기로 맘먹었다.
또 이만한 돈이면 나랑 이름이 같은 우리 반 친구 김 예지의 저금과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니 카세트 보담 내 저금통장에 새겨질 까만 글씨의 숫자가 더 탐이 났던 것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저금통장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축을 잘 안하던 나였다. 내가 저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저축을 시작하게 된 것은 6학년이 되면서 새로 알게 된 우리 반 ‘김 예지’란 아이의 통장을 보면서부터이다.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저축을 해온 ‘김 예지’의 통장에는 1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우리들에게 100만원이란 돈은 너무 엄청난 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으로 ‘흥. 얘네 아빠, 엄마는 되게 부잔가 보네. 노래방한다고 하더니’하고 생각하며
“야! 넌 참 좋겠다. 넌 저금이 많아서.‘
그러면서도 ‘흥! 어디 그게 자기 돈인가?’하고 빈정거리는 기분으로 말하였다.
“응 우체국 언니가 그러는데 이제 100만원이 넘어섰기 때문에 또 새로 통장을 만들어야 된대. 무슨 일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야 된다고 그러셨어.”
하며 은근히 자랑처럼 말을 하는 것이었다.
‘흥! 뻐기기는 부모 잘 만난 것 가지고 추켜 세워주니 더 얄밉게 구네.’라는 생각에 휙 돌아서서 교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공부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우리 둘 중 누군가를 부르실 때는 성을 붙여 불러 주시면 좋으련만 매번 그냥 이름만 부르는 바람에 서로 대답을 하다가 괜히 아이들 웃음거리가 된 적이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별 친해지지가 않는 아이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예지가 나를 자기 집으로 놀러가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해도 별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다. ‘또 자기 집 부자라고 자랑은 하고 싶은 모양이지.’라고 생각은 했으면서도 은근히 얼마나 잘 사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 날 수요일은 학교 계발활동이 있는 날이라 평소보다 한 시간쯤 일찍 학교를 마칠 수 있어서 예지네 집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대문을 열어 주시는 예지어머니께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건물 3층에 있는 예지네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부잣집답게 집안은 깨끗하고 좋은 가구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예지 어머니께서 내어 주시는 맛있는 과일을 먹고 난 뒤였다.
“예지야! 내 저금 돈을 마련해 주는 고마운 분들을 만나러 가겠니?”
“고마운 분들???”
의아한 느낌으로 되물었다.
‘예지는 부모님 말고 또 저금할 돈만 따로 주시는 분도 계시나?’라고 생각하며...
이제껏 예지에게 품었던 오해는 말끔히 풀릴 수 있었던 것은 예지네 집 뒤뜰 언덕바지에 있는 제법 커다란 닭장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닭장 안 둥우리에는 소담스럽고 때깔 좋은 계란이 들어 있었다. 닭장 안으로 성큼 들어선 예지는 여기저기서 푸드덕거리는 닭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둥우리 옆으로 가서 태연하게 계란을 통에 주워 담아 나오는 것이었다. 사실 닭장 안에는 이상하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옆에 서 있는 것만 해도 나는 싫은데 예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그런 예지가 학교에서 보던 예지와 전혀 다른 아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냄새가 좀 심하지?”
계란 통을 들고 냄새나는 닭장을 나와 옆에 있는 창고 문을 열면서 예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네 왔다.
“이 닭들이 네가 말하던 그 고마운 분들이니?”
“응. 이 닭은 내가 몇 년 동안 쭉 길러 왔던 것들이야. 사실 내 저금통장의 주인공이기도 해.”
하며 방금 꺼내 온 계란을 며칠 동안 모아 두었던 계란과 같이 조심스럽게 담아 두는 것이었다.
“조금 더 모이면 어머니께서 우리 집 1층에 있는 슈퍼 아주머니께 팔아 달라고 넘기실 거야. 내 계란이 제법 인기가 좋거든. 아주머니 말씀에 다른 계란보다 잘 팔린대.”
“또 우리어머니가 무공해라고 선전을 많이 해주셨거든...... 값도 조금 싸게 해서 팔기 때문에 더 인기가 좋대나 어쩐대나... ... .”
그러면서 씩 웃는 예지의 얼굴을 놀랍게 쳐다본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끄러웠다.
그 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예지를 부잣집 딸이니 뭐니 하며 속으로 비웃었던 내가 너무 얄밉고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미안해! 예지야.”
“뭘?”
“아니 그냥!”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이 마냥 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학교 등굣길에는 평소와는 달라 조금 더 빠르게 집을 나섰다.
예지네 집 대문 앞에서
“예지야! 학교 가자!”
골목길을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돌아 볼 정도로 큰 소리로 불러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잠시 기다려 예지와 같이 학교를 가면서 얘기를 꺼냈다.
“예지야. 넌 참 좋은 친구야. 어제 네게서 많은 걸 배웠지. 나도 너처럼 이제부터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저금하기로 했어.”
“응, 그래. 그렇게 해봐. 저금통장에 숫자가 올라갈수록 얼마나 자랑스럽고 가슴이 뿌듯한지 몰라. 그리고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이번에는 조그만 토끼처럼 생긴 귀여운 기니피그를 사서 키우기로 했다. 새끼를 낳으면 다음엔 네게 한 마리 선물할게.”
라고 또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또 그런 자랑을 하는 예지가 은근히 얄밉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이번만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 예지가 너무 훌륭하고 어른스럽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오늘따라 새롭게 알게 된 내 친구 예지와 함께 걸어가는 학교 길 언덕배기에는 눈부신 아침 햇살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하얀 개망초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2001년 금산초등학교에서 학생지도 용으로 만든 창작 산문
(금산초등학교 근무 1999 - 2002 년)
김치경의 동요노래 모음을 개망초 꽃밭에서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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