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7. 21:11ㆍ흐린날들의 풍경들/내 마음의 잔상(殘像)
함양 지곡 개평리 일두 정여창 고택방문 기념
소쩍새야! 잘 가.
“악!”
학교로 가다가 동생과 나는 소리를 질렀다.
너무 끔찍해서 고개를 돌렸다.
길바닥에 처참하게 널려있는 것은 지난 밤 사이에 오고가는 차에 치여죽은 너구리 한 마리였다. 작은 새끼너구리는 제대로 자라보지도 못한 채 자신의 몸을 처참하게 찢기고 짖눌려 길바닥에 널려있었다. 오고가는 차 때문에 빨간 속살을 드러낸 채 아스팔트 길바닥에서 아까운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었다.
‘누가 그런 것일까?’
꼭 누가 그랬나를 따질 필요도 없이 지난 밤사이에 길 건너던 너구리가 달리던 차에 치인 것일 것이다. 꼭 차의 잘못이랄 것도 없지 싶다. 야생동물들이 밤사이에 길을 건너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고 또 달리던 차는 브레이크를 밟을 틈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번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도로를 만들면서 야생동물들이 다닐 수 있도록 지하통로라도 따로 만들어 주는 조그마한 배려만 있어도 야생동물들이 수난을 덜 당할텐데…….”
하며 아쉬워하시던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다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동물들도 생각을 할 수 있고 표현을 할 수 있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인데 이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냥 죽게 내버려둬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정말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길을 건너던 사람을 차로 치어 다치게 하면 엄청 난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동물이 차에 치였다고 하면 운전자는 ‘에이 재수 없어.’하며 그것으로 끝이다.
처참하게 길바닥에서 죽은 어린 너구리를 보니 지난 해 이맘때쯤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지난 여름방학이었다.
지리산아래 함양에 계시는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해가 저물어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이었다. 얼마 전 말끔하게 새로 개통한 진주-대전간 고속도로에 막 들어서려는데 도로 옆 수풀 속에 검은 물체 하나가 ‘푸드득 푸드득’하는 몸짓이 보였다. 아버지께서는 차를 세우시고 도로 아래로 내려가시더니 낯선 새 한 마리를 안고 오셨다. 얼핏보기에 올빼미처럼 보였다. 새는 길에 달리던 차에 부딪쳤는지 한 쪽 눈을 꼭 감고 어깨쭉지 부근에 핏자국을 보이며 머리도 잘 겨누지 못했다. 참으로 불쌍했다. 집에 오는 동안 나는 새가 제발 죽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새를 따뜻하게 품고 왔다. 나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내 손끝으로 새의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가끔씩 느껴졌다. 정말 짜릿한 느낌이었다.
한시간 쯤 지나 우리가 집에 도착해서 보니 새는 조금 의식이 돌아와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쪽 눈은 감긴 채 다른 한 눈을 뜨고는 우리와 불빛이 환한 낯선 환경을 보고는 잔뜩 겁에 질려 꼭 떨고 있는 것처럼 보여 정말 안타까웠다.
아버지께서는
“회복이 되는 대로 빨리 날려보내자. 우리가 잘 보살펴 주면 빨리 나을 거야.”
하시면서 농기구 창고 한구석에 새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나는 우리가 데리고 온 새가 궁금해서 학생대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다친 새는 소쩍새였다.
사전에는 ‘올빼미목 올빼미과의 새. 길이 약 20㎝. 전체가 갈색의 깃색을 하고 있으며, 위․아래 모두 암갈색의 세로 반점이 있다. 홍채는 노란색이다. 무성한 삼림에 살며 밤에 먼지벌레․딱정벌레․메뚜기․풍뎅이 등의 곤충류를 잡아먹는다. 나무의 구멍을 집으로 하고 둥근 모양에 가까운 흰색의 알을 4~5개 낳는다. 알을 품는 것은 암컷만이 하며 새끼는 암수 모두 기른다. , 라고 하며 소쩍새 그림과 함께 산란시기를 비롯해서 서식지, 먹이 등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었다. 동생과 나는 소쩍새 먹이 감으로 가장 손쉽게 생각한 것은 집구석을 돌아다니는 바퀴벌레였다. 갑자기 바퀴벌레를 잡으려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죽지 않게 잡으려니 정말 힘들었다. 겨우 몇 마리를 잡아 도망을 못 가게 다리를 꺾어서 소쩍새 앞에 뒤집어 놓아두고 얼른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개울에 가셔서 작은 개구리 두 마리를 잡아 소쩍새 앞에 던져 놓으셨다. 다음 날 아침을 넘겨서야 소쩍새는 겨우 날개 짓을 하며 조금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는 먹이는 여전히 잘 먹으려 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밤새 몇 마리 바퀴벌레와 개구리 한 마리가 소쩍새 앞에서 사라진 일이다. 생각해보면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면서 자연에서 먹이를 잡고 생활했던 야생 동물이라 좁은 곳에 갇혀서 낮선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다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우리 집에 소쩍새가 온지 3일이 지나자 소쩍새는 제법 양쪽 눈을 모두 뜨고 둥글고 큰 눈으로 꼭 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창고의 우리 안 구석에 앉아 있었다. 저녁나절이면 제법 ‘소 솟 쩍~ 소 솟 쩍~’ 하며 울기까지 했다.
아버지께서는
“이제 날려보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시면서 내일 날이 저물면 우리더러 같이 뒷산으로 올라가자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우리가 좀더 키우다 날려보내면 안돼요?”
동생과 나는 동시에 합창이라도 하듯 아버지께 졸랐다.
“아니. 이쯤 되면 혼자 힘으로 새는 살 수 있을 거야. 괜히 야생에서 살던 새를 집에서 키우려 들면 오히려 더 약해져서 죽게 될지도 몰라. 이게 소쩍새를 더 위하는 일이란다."
하시며 우리가 더는 말을 못 붙이게 하셨다.
다음 날 해질 무렵 뒷동산 우리 농장이 있는 숲에서 아버지께서 소쩍새를 날려보내는 순간 동생과 나는
“소쩍새야 잘 가. 이제 차가 마구 달리는 위험한 도로 옆에는 오지말고 산 속에서 재미있게 살아.”
하고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새는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듯 몇 번 날개 짓을 크게 하더니 이내 어스름이 내려앉은 굴참나무 숲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곧 고향으로 날아가겠지?
지금도 길을 걷다 주변 수풀 속에서 새 소리가 들려오면 소쩍새가 생각나곤 한다. 가끔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가 살려 날려보낸 소쩍새가 아닌가해서 무척 반갑기까지 하다. TV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듯이 야생동물이나 사람이나 다 소중한 생명을 타고났는데 사람들은 몸보신을 한다며 마구 야생동물들을 잡아먹거나 돈벌이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밤하늘 별들이 촘촘히 내리쬐는 시골의 밤은 정말 은빛 세상 같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과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골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새들이 못사는 땅엔 사람도 못살아요."
얼마 전 TV에서 새 박사로 유명한 ‘윤 무부’교수님께서 하신 이야기다.
그렇다. 사람은 혼자 살수가 없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을 마구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도 아름드리 굴참나무 우거진 뒷동산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지 시골에서 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이다.
2000년 금산초등학교에서 학생지도 용으로 만든 창작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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