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바스락하고 부서질 것 같은 얇은 어머니의 생명 앞에서/edmondus

2014. 6. 26. 12:46흐린날들의 풍경들/내 마음의 잔상(殘像)

 

 

 

어머니!

오늘 병실을 나와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사무실 앞 화단을 내려다보니 푸른 수풀 틈으로 붉은 철쭉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자태를 뽐내며 붉게 핀 철쭉을 보고도 오늘은 웃어 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너무 젊었던 시절

약관을 벗어나 이립 뜻을 세우기전의 나이에

당신의 남편이신 아버지를 우리 곁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느날 당신은 주변에 도와줄 아무런 사람 없는 가운데 홀로 계시는 가운데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아버지 입에 넣어드려 목숨을 구하게 하시고 그래도 몇 년을 더 사시게 하셨지요.

그런데도 부끄럽게도 저는 35년전이나 지금에서도 경각에 달린 당신의 목숨 줄 앞에서 여전히 허둥지둥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35년전 너무 허망하게 일찍 아버지를 보내드린 일은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능력도 , 돈도, 경험도 어느 것 하나 가진 게 없는 나이 스무여덟의 젊은 사내였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갓 발령은 받아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시작한 나이에 쓰러진 아버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 드리기엔 너무 힘이 부족한 벌거숭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난 뒤 제가 평생 동안 가슴에 품고 살며 각오한 한 가지는

 

이제 내 가족은 내가 지키겠다.”

家長으로 내 할 일은 내 가족을 끝가지 지키고 보살피며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

굳게 다짐했지요.

적어도 저는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 일을 알아 줄 사람은 또 누가 있을까요?

 

어머니. 당신은 제게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한편 제 평생의 동지셨습니다.

아버지가 계셨을 때나 떠나고 나셨을 때나 우리 가족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헌신하고 뒷바라지해온 엄마의 평생을 제가 알고 또 제가 우리 가족을 위해 평생을 땀 흘려 온 사실을 알고 곁에서 지켜 봐주신 분은 오직 어머니 당신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머니 당신이

오늘은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위태로운 목숨을 가슴에 걸고 지금 병상에 누워계시는군요.

그러니 아침 출근길이 무겁고 또 무거울 수 밖엔 없었습니다.

 

어머니!

이젠 제가 어머니를 끝까지 지켜드려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또 어머니를 훌쩍 떠나보내 드릴까봐 가슴조립고 또 마음이 무겁고 아픕니다.

어머니께서 이제 제 곁을 떠나면 저는 평생의 동지를 잃는 까닭입니다.

아무도 어머니 당신과 제가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며 뒷바라지해온 일을 알고 기억해 낼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낡은 바바리 한벌로 2년의 대학생활을 버텨낸 일이나 운동화나 구두 한 켤레 살 돈이 없어 며칠 동안 낡은 장화를 신고 학교에 출근했던 사실이나 제 동생들 학비를 보내기위해 주변에 아는 사람들 이곳저곳에 손을 벌리며 구걸하다시피 돈을 빌려 송금하며 애간장을 태우던 당신과 저의 모습을 기억해 낼 사람이 과연 또 누가 있을까요?

초임교사로 갓 발령받아 매달 받는 쥐꼬리만한 제 봉급이 우리 온가족의 유일한 생명줄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세 동생들의 학비 뒷바라지를 해야했고 그리고 남은돈으로 우리 식구들이 먹고 살아야했으니 그러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지요

그래서 방이 많은 낡은 전셋집을 가까스로 구해 하숙을 시작한 것도 어머니 당신이었습니다.

덕분에 한창 자라던 내 동생들이 고맙게도 배를 곯지 않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도록 지켜주신 것도 어머니 당신이었습니다.

우리들이 학교에서 좋은 일로 칭찬을 받던 나쁜 일로 꾸지람을 받아오던 이 모두 궂은 일은 어머니 당신의 몫이었고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해 오셨습니다.

항상 우리들 사형제들에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고 자애스러운 어머니의 표상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던 당신이 오늘은 훅 불면 멀리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먼지처럼 가벼운 목숨을 링겔 병에 걸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시는군요.

 

어머니!

눈물이 납니다.

당신을 지금 보내드리기엔 너무 내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들이 더 좋은 날을 살고 또 좋은 모습으로 사는 모습을 보시고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실 수는 없을까요?

비록 바른 정신을 잃으시기도 했고 또 지난 일을 모두 잊었고 또 자식들의 얼굴마저 모두 잊은 치매에 걸리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당신이 우리들의 이 모든 모습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고 또 제가 항상 다가가서 엄마!” 하고 다정하게 부를 수 있게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제 곁에 더 오래오래 사시다가 제가 엄마, 이젠 가셔도 좋습니다.” 하고 손목을 놓아 드릴 때까지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어머니!

오늘 당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걸 아는 건 제겐 너무 무참한 일입니다.

우리 형제들에겐 단 하나 남은 어버이이기도 하지만 제겐 평생의 유일한 지기를 떠나보내는 일이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제 어머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저이고 저를 가장 잘 아는 분은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가장 잘 이해해주셨고 제 고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봐주셨고 제가 힘들게 살며 절치부심 가족을 지키며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우려온 과정을 알아줄 사람은 어찌 어머니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을까요?

 

먼저가신 아버지처럼 절대 당신을 허망하게 훌쩍 보내드릴 수는 없다고 마음먹습니다.

제가 곁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손목을 붙잡고 늘어지더라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보내드리지 않겠습니다.

 

엄마!”

엄마도 힘을 내 !”

 

2014년  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