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22. 16:38ㆍ흐린날들의 풍경들/내 마음의 잔상(殘像)
세월호침몰사고 !잔인한 4월입니다.
지난 4월 16일 제주를 향해 인천을 떠났던 여객선 세월호란 배에는 환하게 웃으며 수학여행에 마음이 부풀었을 꿈 많은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가득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는 이권과 돈에 눈먼 탐욕스러운 어른들이 이웃 일본에서 폐선을 들여와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흉악한 작품이었고 또 돈벌이에 급급하여 각종 안전규정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무리하게 과적을 일삼았던 까닭에 마침내 250여명의 수많은 우리 아들과 딸들을 무참하게 온 국민과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타깝게 수장시키는 끔직한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떠날 때는 모두 325명이었지만 오늘 현재까지 230 여명의 학생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또 열여섯명의 아이들은 아직도 생사를 모른 채 진도의 앞 맹골수로가 있는 차가운 바닷 속에 수장되어 자기를 건져달라고 말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이젠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하면서 부끄럽게도 교만과 자만에 빠져있었던 이 즈음 ‘아니구나!’ ‘우린 아직 멀어도 한 참 멀었구나!’ ‘우린 여전히 참으로 무능하구나!’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어른 됨이 이토록 부끄럽고 무안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요?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지금 물속에 빨려 들어가는 뱃속에 허우적거리며 애타게 어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침몰하는 배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송매체나 지켜보면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참담했던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소위 골든타임이라고 말하는 생존을 위한 절호의 시간 50여분을 아이들에겐 꼼작도 못하게 기다리도록 지시한 다음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쓰레기같은 인간들(배를 침몰몰하게 만들었던 핵심 선원들과 선장)은 자기만 살겠다고 승객들도 배도 버리고 비겁하게 속옷차림으로 도망을 쳤으며 국민의 공복이라고 자칭하는 해경은 이들 선원들 먼저 구하기에 급급하였고 뱃속에 남아있었던 승객도 학생도 아예 안중에 없었으며 아예 선실 안으론 들어가 볼 요량조차 못했으니 이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싶어 다시생각해도 참으로 아연 실색하고 분한 마음에 움켜 쥔 손이 부르르 떨리는 걸 멈추기 어렵습니다.
가정하건대 비록 큰 사고를 맞았지만 우리 어른들이 자기 할 도리만 다했다면 충분히 대부분 살릴 수도 있었을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선실 속에 내팽게치듯 버려두고 자신들만 도망나왔던 까닭에 어른들의 안내방송 지시만 믿고 끝까지 착하게 기다리고만 있다가 갑자기 물이 차오르는 화급한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들었을 그 시각, 어른들의 안내방송만 믿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키다가 최후를 맞이하며 아이들이 느꼈을 배신감과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절명의 그 상황이 그 아이들을 얼마나 참담하게 하였을까요?
몸속의 병 또한 그러하듯 사회적 병리가 깊어 결국 썩을 대로 썩고 곪을 대로 곪아버린 상처가 터져버린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상처와 피해가 너무 크고 절실해서 참으로 쓰디쓴 아픔이 가슴을 후벼 팝니다. 살아 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을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사고 후의 각종 뒷이야기는 사족처럼 공직자들의 안일하고 한심한 행태는 온 국민의 울분을 다시한번 더 되짚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고. 평소 좋은 일엔 내노라 얼굴 내밀던 수많은 고위 공직자, 관료들중 일부는 이 지경이 되어서도 피해자 가족이 모인 팽목항에 나타나 기념사진을 찍는 행태를 드러내었으며 평소 거들먹거리며 이권과 정략적 판단에 따라 각종 재난 안전 법률조차 국회의 창고 속에 내팽겨 쳐두었던 국회의원들께서는 자신들의 허물은 덮어둔채 재난에 대한 대비와 뒤 처리를 지리멸렬하게 한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기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과연 그들에게 그런 자격이나 있을까요? 이제 이 모든 사고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또 모든 사고의 뒷수습은 마치 대통령 혼자에게 미루고 있는 듯하며 박대통령은 위로가 되어줄 가족 하나 변변치 못하고 또 여자 혼자 힘으로 이 어려운 현실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원 원인부터 진행과정, 구조과정, 뒤처리과정에서 온 나라의 온 조직과 사회적 병폐, 총체적 난맥상이 한 순간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기도 어려울 듯싶을 정도입니다.
한 목소리로 해경의 대처를 나무라며 손가락질하던 정치계의 어른들은 박 대통령이 응분의 책임을 물어 해경해체라는 초 강수의 징벌을 내리자 또다시 이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다시 은근히 해경편을 들며 박대통령을 나무라고 있으니 이들 간사한 인간들이 국가적 큰 재앙을 또 자신의 입신 영달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나 싶어 참으로 괘씸하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부끄럽게도 어디 이제 조금 나이 들었다 해서 아이들을 타이르고 가르치고 어른이라고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기가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이러고도 썩은 환부를 말끔하게 도려내지 못한다면 우린 아예 희망이 없는 나라입니다.그러면서도 나 역시 부끄럽게도 박대통령 한 사람에게 온갖 큰 숙제를 떠안기고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비겁한 국민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나마 아래 따로 복사해 올린 조선일보 사설의 글처럼 아이들의 선생님들 만큼은 결코 비겁하지않았다는 사실이 무너져내린 우리들 가슴을 조금이나마 위안하게 하지만어쩌다 이 시대의 어른됨이 참으로 부끄러웠던 4월,잔인한 4월이 세월을 비켜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2014년 5월 22일 참담했던 그 날을 잊지 않기위해 몇자 쓰다.
배경음악: April / Deep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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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5월 22일 자 조선일보 사설입니다.
꼭 기억해야 할 단원고 선생님들의 마지막 순간
세월호에 탔던 안산 단원고 교사는 14명이었다. 그중 12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5층에 있던 전수영·김초원·이지혜·최혜정·유니나 등 여교사 5명은 아이들을 구하러 4층으로 내려갔다가 희생됐다. 4층엔 남교사 6명이 있었는데 남윤철·이해봉·김응현·박육근 교사는 시신으로 확인됐고 양승진·고창석 교사는 실종 상태다.
5층 여교사들이 4층으로 내려갔을 때는 배가 40~50도 기운 상황이었다. 세월호 선원들은 진도 해상교통센터(VTS)와의 교신에서 "배가 기울어져 사람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다. 조타실에서도 벽을 잡고 겨우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교사들은 아이들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탈출을 도우려고 절벽 경사나 다름없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숨진 최혜정 교사는 SNS로 학생들에게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는 글을 남겼다. 전수영 교사는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오자 "아이들 구명조끼 입혀야 해"라고 얘기한 후 끊었다. 남자 친구에겐 '배가 침몰해. 구명조끼 없어. 미안해.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놀란 남자 친구가 전화를 걸어오자 "학생들 챙겨야 한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남윤철·이해봉 교사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채워준 후 비상구까지 안내하고는 다른 학생들을 더 구하겠다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실종된 양승진 교사는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 제자에게 건네줬다.
14명 교사 가운데 해경과 어민에 의해 구조된 사람은 세 명이었다. 5층에 있던 이애련 교사는 4층으로 내려가 닫힌 선실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문이 떨어져 나가면서 갑판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구조됐다. 강민규 교감은 5층과 4층 사이 계단에서 학생들에게 "올라오라"고 소리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구조됐다. 그는 저혈당성 빈혈을 갖고 있었다. 강 교감은 살아나왔다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사고 이틀 후 자살했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다. 하지만 단원고 선생님들은 죽을지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아래층 선실로 내려가고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줬다.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하면 자신 있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책임감(責任感)의 무게를 무엇으로 달 수 있을까.
단원고에만 특별히 훌륭한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이번에 단원고 교사들의 용기 있는 희생을 보며 대한민국 교사들 가슴속엔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 자기보다 공동체를 앞세우는 마음이 직업의 DNA로 새겨져 있다고 믿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단원고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녹아내리는 참담한 슬픔을 견뎌낼 수도 있는 것이다.
출처: 5월22일자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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