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edmondus
2012. 12. 27. 22:28ㆍ마음을 벗어 걸어 둔 곳/모노로그(獨白)들.........
부치지 못한 便紙
정말 미안합니다.
참 이기적이게도
내가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그만큼만 당신에게 있어
내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습니다.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흐린 어느 날 시골 우체국 창가에 서서
쏟아져 내리는 붉은 노을을 쳐다보고
문득문득 더 늦기 전에 당신께 편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을 깊은 어느 날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교실 창가에서서
바람에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운동장을 쳐다보며
더 늦기 전에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고 또 생각했습니다.
눈 내린 어느 겨울날
비닐하우스 꽃집을 지나치다가
문득 잘 간추려 다듬어진 하얀 국화 한 다발을 보고
더 늦기 전에 당신께 편지를 꼭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편지를 써 놓고는 결국 보내지 못하고 말았지요.
그러고도 무심한 세월을 다시 십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이마엔 주름이 굵어졌고
흰 머리칼이 듬성듬성 손에 잡힙니다.
씁쓸하게도 용기란 건 나이가 든다고 생기는 건 아니더군요.
결국 이 글도 부치지 못한 편지글이 되고 말겠지요.
그런데 더 쓸쓸한 건
이젠 당신의 얼굴이 자꾸만 흐릿해져 간다는 걸 문득 깨닫고
깜짝 놀라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영원히 당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요?
2012년 가을 깊은 날 붉게 물든 학교 담장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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