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0. 11:31ㆍ흐린날들의 풍경들/내 마음의 잔상(殘像)
잘 아시다 시피 저는 우리학교의 공모교장입니다.
학교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또 여러 분들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우리학교 학생들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어쨌던 학교를 그만 두지 않는 한 저는 이곳에서 계약한 3년을 살아야 하는 매인 몸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엔 평생을 지키며 살아온 학교를 훌쩍 떠나 자연인으로서 남은 삶을 살아가야하는 인생 후반부의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직 교직생활이 많이 남기도 했고 또 프리하게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동료교직원 여러분이 무척 부럽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사는 동안 학교장으로서 가지고 있는 긴 생각을 말씀으로 드리기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또 지루해 하실까 봐 글로 적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시간을 내서라도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시간에 쫓겨 아래 글을 평어로 쓴 점은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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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Frederic Delarue]Reflection
말로만 아닌 정말로 우리 학교가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이 오고 싶고 머물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꿈이요 희망이다.
이제껏 전임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들과 학교 동창회가 이 학교를 살려내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을 해왔다.
요즘같이 경기 어렵고 힘든 때 동창회원들이 십시일반 동창회비를 내서 버스를 빌려 시내에서 학생을 나르고 있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정이다. 지금 동창회의 사정이 무척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동창회 사정을 듣고 나니 이대로 학교가 동창회에만 기대고 있기에는 너무 경우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들이 근무할 수 있는 학교를 이만큼이라도 살려내 주었으니 동창회의 도움없이 이제 부모 스스로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를 찾아와서 입학을 하게 해 달라고 조르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 내 기본 생각이다.
즉 쉽지는 않겠지만 스쿨버스가 아닌 부모 스스로 자가용 차를 가지고 아이들을 등교, 하교 시키면서도 우리학교에 다니고 싶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동창회 지원의 통학차량없이도 학생이 넘쳐서 가려 뽑는 학교를 만들어 내야 한다.
( 학교가 주변의 큰 학교와 경쟁력이 있어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고 우리학교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 오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학생수의 학생이 교실에 있고
편백나무 향기가 가득한 교실에서 얼굴 맑은 선생님과 따뜻하게 공부하고 탱자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운동장에 나가면 아이들은 마음껏 뛰 놀 수 있고 정원엔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고 맑은 바람을 마시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는 학교를 만들어야 겠다.
가만 생각해보면 도시근교에 있으면 이만한 자연환경을 잘 갖춘 곳도 드물다.
우리가 가야할 학교의 기본적인 방향은 유기농과 같은 웰빙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교직원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환경은 막겠다. 숲을 가꾸고 나무를 잘 키우되 부탁은 농약은 어쩔 수 없을 때만 쓰자. 특히 제초제를 운동장이나 화단가에 뿌리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하자. 바람 불면 먼지가 되어 우리 가슴속에 들어오게 된다.
너무 풀이 많이 나서 힘들고 괴로우면 풀 뽑는 아줌마를 사서라도 잡초를 뽑아내도록 꾀를 내보겠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형편이 되면 좋은 나무를 구해다가 학교 정원에 옮겨 심겠다.
그리고 우선 우리들부터 경쟁력있는 선생님이 되자.
그렇게 되도록 학교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고 싶다.
우리 선생님들에게 부탁드리는 점은
1. 집안을 잘 다스리고 부부간에 화목하게 지내시기 바란다. 그리고 친,처가 부모께 효도해서 사랑받는 아들 딸, 며느님이 되기 바란다.
그래야 학교에 오면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워야 교실에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법이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과중한 업무로 힘은 들겠지만 학교장으로 선생님들께 가능한 스트레스를 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모든 공문서나 계획서를 최고로 만들 수는 없다. 최대한 일상적인 계획서나 보고서는 남들이 고생해서 잘 만들어 놓은 것을 가져와 최대한 우리학교실정에 맞게 고쳐서 사용하고 꼭 필요한 계획서나 보고서만 집중하자.
그래야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업시간을 적게 빼앗기게 된다.
2. 아이들이 미울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랑을 줘 보자.
예전에 젊었을 때는 많이 쥐어박았다. 미운만큼 표 안 나게 말썽 안날 정도로 때리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저 애들 때문에 내가 이제껏 이렇게라도 살아왔고 또 내 부모를 모셨고 내 가족을 먹여 살렸고 또 내 아이들을 키워냈지
순간, 아이들이 전과 달리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하더란 것이다.
그 즈음부터 고등학교 졸업 후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진주교대 교문이 그렇게 고맙게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시간에 교실에 안 들어오고 바깥을 떠돌며 애를 먹이던 무던히 밉던 ADHD 그 애가 밉게 보이지 않고 측은해 보였다. 그래서 아이를 꾸중하는 대신 자꾸 따뜻하게 껴안아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품안에서 도망치려하고 바들바들 떨며 불안해하던 아이의 심장소리를 느꼈는데 몇 번을 거듭하다보니 심장의 박동이 차츰 부드러워지고 그러다 어느새 선생님인 나를 밀어내지 않고 편안해 하고 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학교 부근 강주연못에 현장학습을 데리고 나간 날 아이가 곁에 다가와 “선생님 저 좀 안아주세요.” 말을 하며 문득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도 가좌동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의 부모님과는 가끔 통화를 하고 지낸다. 2007,8년 예하초등학교에서 특수반담임을 하며 만난 아이인데 그 아이는 지금 특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틈틈이 교실에서 새를 키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던 그 아이의 두 살 터울 고3 인 누나는 지금도 새를 키우며 동물조련학과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3. 눈높이를 낮추시기 바란다. 아이는 아이다.
아이들은 아직 겉보기엔 영악하고 영리해 보여도 결국은 아직 아이란 점이다.
어리다는 이야기이다. 어른인 여러분이 보살펴야 할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을 주면 아이는 안다. 여러분이 아이들의 사랑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사랑을 주시기 바란다. 아이와 어른이 다른 점은 그런 점이다.
선생님이 곁에 다가와 주시기를 기다리는 그런 많은 아이들은 지금도 교실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그래서 나도 교장으로서 아이들을 자주 만나고 아이들 수준의 이야기를 듣겠다.
가능한 1주일에 한번은 각 학년 교실 벽에 허접한 퀴즈를 내어 붙이고 그 답을 알아오는 어린이에게는 교장실을 찾아오게 해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탕 몇 개를 들려 보내겠다.
그러는 과정에서 교장실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드나 들 수 있게 하고 또 아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
교감시절 때 내내 그렇게 해 왔으니 달리 더 새로울 것도 없는 시도다.
교실 한 구석에 A4 종이 한 장 끼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면
부모의 호주머니 형편이 좋거나 나쁘거나 구분없이 누구나 공평하게
다양한 욕심나는 방과후 교육을 돈 들지 않고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학부모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겠는가?
그래서 얼렁뚱땅 시간 채우고 시간 지나면 돈 받아 가겠다는 방과 후 강사가 있다면 재계약시 가차없이 잘라버리겠다. 돈을 더 주고서라도 훌륭한 강사를 영입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해 열심히 하는 만큼 가능한 충분히 보수를 지급하고 우리 아이들의 실력을 경쟁력있게 만들어 내 보이면 부모님과 아이들은 스스로 찾아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선생님들께서도 주의 깊게 살펴 주시기 바란다.
담당 선생님은 물론 이웃교실 선생님들도 강사들의 태도나 교수방법, 학생들의 흥미도 등을 주의 깊게 살펴 봐 주시기 바란다. 시간 때우며 강사비 벌러 온 사람인지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물론 학부모 또는 학생들에게 강의만족도를 받아 반드시 반영하겠다.
그러니 우리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방과후 강사들과 비교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스스로를 갈고 다듬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점을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
그래서 스포츠강사에게 체육수업을 맡기고 교실에서 편히 쉴 생각을 하다가는 결국 종내 밥그릇 다 빼앗겨 버리고 어느 날 학교의 주역이 아닌 변두리 구성원이 되어 있는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미 많이 그렇게 되어버린 부분도 있다.
이러한 우리 학교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학교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변 아파트촌에 홍보해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학구위반을 해서라도 우리 학교를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도록 노력을 하겠다. 필요하다면 전단지라도 만들어 주변 정촌, 가좌, 주약초등학교 학구의 아파트에 뿌리겠다.
요즘은 PR시대라고 한다. 교육도 홍보가 필요한 세상이라고 한다.
다행히 xx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우리 학교 전임 교장선생님이었고 새로 오신 xx 교장선생님은 잘 아는 후배님이라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혼자 생각해본다.
돈이 마련다면 지역방송에 홍보 동영상을 만들어 내 보내기라도 하겠다.
아는 기자도 있고 아나운서도 있으니 불러들여 특집기획기사나 특집방송을 만들어 내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평소 살면서 학교의 관리자로서 생각하는 나의 강점은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상벌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점이기도 하다. 적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고 또 부지런히 제 할 일을 하는 분들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분을 세상에 알리고 또 칭찬 받게 해드리며 보상을 해드리겠다는 점이다.
기회가 되면 최대한 표창도 챙겨 드리고 원하는 연수기회도 확보해 드리겠다. 그게 국비 해외연수라면 더 좋겠다.
필요하다면 학교장의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시간적인 여유를 드리기도 하겠다.
연가, 병가, 법정 휴가, 41조 연수 등을 활용해서 인생을 즐기시기 바란다.
다만 교장의 권한을 벗어난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하면 결단코 거절이다.
무단 조기퇴근, 무단 근무지 이탈 행위에 대해서는 사유서를 징구할 것이며 누적되거나 불복시는 공무원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응분의 조치를 받도록 하겠다.
그리고 근무평정을 최대한 낮추어 성과 상여금의 손해와 승진 및 이동에 제약을 드리겠다.
만일
교장의 뜻에 반하거나 제 뜻대로 일이 안된다고 불평 불만을 가진다면 그래서 제 마음대로 일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여러분들 중 누군가가 이 교장의 생각이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유스러운 여러분이 떠나시기 바란다. 그러니 좋던 싫던 여러분들도 이곳에서 당분간 머물기로 작정을 하셨다면 학교장의 스타일에 따라 적응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싫어도 좋아도 나는 이곳 관봉초등학교에서 내 교직생활의 마무리를 해야한다.
내 인생의 끝 부분을 정갈하고 또 아름답게 하고 싶다.
그래서 최대한 약속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비겁한 뒷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점이다.
지내는 동안만큼은 여러분과 같이 고민하며 여러분과 같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부디 나를 도와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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