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몬드 2013. 2. 17. 04:30

 

사라진 계절 / 천양희

 

사자별자리 자취를 감추자 봄이 갔다.

꽃이 피었다고 웃을 수만은 없는 그런 날이었다.

쾅 문을 닫는 순간 내 안의 무엇인가 쾅, 하고 닫혔다.

고통이란 자기를 둘러싼 이해의 껍질이 깨지는 것이었다.

 

전갈자리별 자취를 감추자 여름이 갔다.

초록 나무에도 그늘이 짙은 그런 날이었다.

종이 위에 생각을 올려놓는 순간 말할 수 없어 나는 침묵을 썼다.

외로움은 내 존재가 피할 수 없이 품은 그늘이었다.

 

노랑발도요새가 자취를 감추자 가을이 갔다.

고독이 지쳐 뼈아프게 단풍드는 그런 날이었다.

잃다와 잊다가 같은 말이란 걸아는 순간 내 속에 피가 졌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남은 유일한 이유였다.

 

흰 꼬리딱새가 자취를 감추자 겨울이 갔다.

몸이 있어서 추운 그런 날이었다.

안다고 끝나는 게 세상일이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 내 안의 어둠이 쏟아졌다.

이 세상에 와서 내가 없는 계절은 없을 것이다.



배경음악 - Poeme - Secret Ga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