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하고 살아도 너무 짧기만 한 인생
Tedium Of Journey - Relaxation Music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주세요.
당신 내 뱃 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픔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지금부터 420여년 전 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안동에 살던 고성 이씨 젊은 양반이 오랜 병마아 다투다 끝내 서른 한 살의 아까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이 무렵 임신 중이었던 그의 아내는 차마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기 서러워 숨을 거두는 남편의 손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삼 줄기에 묶어 엮은 미투리 한 컬레와 한 장의 언문 편지를 써 가슴에 얹어 보냈다.
402년이 지난 1998년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내 한 무덤에서 죽어 썩지 않은 시신의 품에서 이 편지가 발견되어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원이 아버지에게'라는 편지글이다.
참으로 가슴 뭉클한 옛 사람 부부의 정에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사랑만 하고 살아도 너무 짧기만 한 인생이거늘
우리네 요즘 인생사가 너무 허술해 보이기만 하는 건 어디 내 생각뿐일까?
2013. 1. 22
(시신과 아내의 편지는 어째서 400년이란 긴 시간을 넘기고도 썩지 않았는지 참으로 알기 어렵다. 주변에서 같이 개장한 다른 시신과 비교해서도 그렇고 또 편지가 발견된 시신의 품에서 나온 다른 사람의 편지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